군계일학, 닭이 없다면 학은 무의미하다.

 Category :: 회상[回想]/군바리


다른 포스트를 쓰려고 블로그에 들렀다가 갑자기 생각난 일화가 있어서 먼저 씁니다.


자유시간...
내가 자유시간이라는 게 조금 생기기 시작한 건 내가 상병을 달고 얼마 안 지났을 때부터였다. 행정병이었던 내겐 잠시 잠깐의 자유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쉽게 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자유시간에 뭘할까 망설이다가 전공분야에 대한 지식을 놓치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02학번 후배를 통해서 간단한 수화책과, 점판&점필을 받았다. 짧은 자유시간이었지만, 수화책을 보여 잊을 것같은 수화를 조금씩 복습을 했고, 점판과 점필로 점자도 하나씩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점자를 찍고 있는 내게 6개월 먼저 입대한 고참이 다가왔다.

야, 윤규식.
상병! 윤규식.

뭐하냐?
네, 점자 배우고 있습니다.
지랄, 야 그거 씨발 눈까리 안 보이는 애들이 쓰는 거 그거잖아?

네, 시각장애인들이 쓰는 건데 점자라고 하는 겁니다.
니는 눈까리도 다 잘 보이면서 그거는 뭐하러 배우는데? 배워도 써먹을 데도 없잖아.

그냥 전공공부한다고 생각하고 하나씩 배우고 있는데 의외로 재밌습니다.
지랄한다 지랄해. 야~!

상병! 윤규식
나는 있잖아. 내 새끼가 장애자면 그 자리에서 목 따버릴꺼다.
.....

나는 얼어버렸다. 그는 내가 배워왔고, 배우고 있고, 배울 것들을 모두 무가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다른 사고체계를 가진 인물로 인식을 했던 그였는데, 그의 그런 발언 앞에 나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던 거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그 앞에서 장애에 관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긍정적으로 보아왔던 그의 장점 마저도 하나의 화제로 인해 모두 단점처럼 인식이 되지 않길 바래서였고, 나의 세상을 그로부터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같다.

그러면서 나는 집단 속에서 독야청청하려 고심했다. 내 색깔을 찾기 위해 선택한 이른 군입대에서 내 색깔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사람들 속에서 흐려지기 싫었다. 그래서 주변 선,후임들에게 영향을 받지도, 주지도 않으려 더욱 애를 쓰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나는 병장이 되었다. 함께 하는 단체생활 속에서 최소한의 함께를 누리며 나의 색깔을 찾기 위해 갈피도 잡히지 않는 나자신과 싸우다가 병장이 되어버렸다. 외곬, 독불장군, 청일점 등등등... 무리속에 흐려지지 않는 나자신을 찾다가 보니 나는 기름방울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다. 군계일학도 수 많은 닭이 있기에 그것이 학으로 불릴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이지 오직 일학만이 존재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후임들에게 눈을 돌리고, 그들의 고민을 살펴보고, 그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나는 병장이 되고 나서야 무리속에서 제대로 융합하는 법을 시험하고, 체득해 나갔다.


ps. 뒤의 내용은 다음 "군바리"분류의 포스트에 조금 더 통합하여 쓰겠습니다. 오늘은 개인적인 사정때문에 여기서 멈추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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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9 22:56 2006/05/2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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