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Y 5기, 그리고 제명사건에 대한 정리Category :: 2009ed/회상[回想] |
아~주 오래되고, 오래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그래서 이 글도 예상만큼이나 길어질 듯하군요.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제명명단게시일 : 2001년 3월 27일
JBY정기총회일 : 2001년 3월 28일
사건 파악일 : 2001년 3월 30일 오후
27일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JBY(주1)에서 5기를 상대로 제명명단을 통보를 하게 된 것이죠. 여기서 통보라고 하게 된 이유는 개별적으로 연락을 준 게 아니라 동아리방 문앞에 명단을 게시함으로써 제명되었음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제명을 하게 된 배경은 아래와 같습니다.
2000년, JBY 4대 회장은 내실과 함께 외적인 발전을 이루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총학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JBY의 밑거름을 다지는데도 노력을 하였으며, 기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지원금을 마련하는 루트도 뚫었습니다. 외적인 활동을 통해 타 대학에서 장애학우관련 모임을 만드려는 학우들도 찾아왔으며, 자치기구가 된 초년이었기 때문에 교내 홍보도 열심히 했습니다.
2001년, 5대 회장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 지금부터 외부적인 활동을 끊고, 내실에만 집중을 하겠다며 장복의 방향을 새로 잡습니다. 4대 회장과는 완전히 다른 JBY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에 다수(특히 5기)의 장복인들은 혼란해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바뀐 JBY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과, 그 동안 진행해왔던 것들이 무의미한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5기들은 4대 회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현재(2001년) JBY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5대 회장과 4대 회장은 같은 학번이지만, 4대회장이 연배가 높은데다 선대 회장을 맡았기 때문에 4대회장을 통해 5대회장을 설득하던가, 아니면 회장의 고민을 이해하고 현재에 대해 이해하기 위함이었다고 추측됩니다.(추측일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 제명명단이 동아리방 문 앞에 게시가 되었습니다. 그 전날 저녁 11시까지 점역(주2)하느라 JBY에 남아있던 동기, JBY의 홈페이지를 개발하던 동기, 항상 누구보다 앞섰던 동기 등, 대략 16명의 동기들 중 8명이 처참히 제명이 되었습니다. 제명을 한 공식적인 이유는 "장애인에 대한 마인드가 없고, 현재 JBY가 너무 비장애학우 중심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명명단을 게시한 다음날 JBY 정기총회가 열렸습니다. 제명당한 8명에 대한 회장의 멘트(자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가 있었고, 그 위 선배들(4학년)이 일괄적인 지지발언을 하여 그 누구도 문제를 삼지않고 넘어갔습니다.
예전 포스트(http://raonsky.com/tt/37)에 거론한 것과 같이 하루 15시간(오전9시~오후6시, 밤12시~오전6시) 알바를 했기에 쉽게 주변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던 저에게 이 "사건"이 알려진 건 30일입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만 알았는데, 하나하나 일의 진행방식을 보니 도저히 말이 안되는 것같아서 일단 사고를 쳐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1학년 때 JBY에서 정보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다음까페의 운영자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단 대강의 사건내용을 파악후 전체메일을 날렸습니다.
[장복]3/31 꿀도 안 먹었으면서...(열기)
먼저, 제명에 대한 불만을 왜 토로하지 않았으며, 왜 문제를 삼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임원단에서 숨기고 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이야기를 좀 해주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이 이메일 하나로 어떤 움직임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이런 상당히 삐뚤한 메일을 본 선배들이 가만히 있는 거에 대해 아주 의아해했습니다.
아래의 이메일도 그렇지만, 각 이메일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점점 강도를 높이며 삐딱해져서 지금 이렇게 공개하는 것이 상당히 뻘쭘하네요.
[장복]4/1 상황을 악화시키렵니다.(열기)
그 날도 노래방 알바를 끝내고, 메일을 보내려고 pc방에 갔습니다. 그래서 또 새벽시간이군요. 가보니 당시 부회장 선배님의 메일이 와 있었는데 그 메일을 읽고 나서 그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제 모습에 놀랐고, 잘못이해하는 거같고, 실수를 하는 거같고,, 그럼 뭔가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던가, 질책을 한다던가, 이해를 시킬 생각은 왜 못했을까? 왜? 왜? 왜?(지금 돌이켜 보면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는 연예인 K군의 묘한 말이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장복]4/3 6기와 비장복인들에게(열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다시 되돌리기가 힘들게 된다는 점을 알기에 저는 조급해 죽겠는데, 나와야 할 답들은 나오지 않고, 마음은 답답해져만 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6기 후배들과 장복까페에 가입한 비장복인들에 대한 걱정이 들어서 메일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장복]4/3 짜고 치는 고스톱...(열기)
제명행위에 대해 공식적, 비공식적인 것을 조금 따져봤었습니다.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공격적인 제목도 쓰구요. 날짜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어려워지는데, 이런 객기를 부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에 불만을 가지면서 점점 더 공격적으로 바뀌게 된 것같네요.
그러던 7일, 극적으로 사태수습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미 졸업을 하신 1기, 2기 선배들이 나선 것이지요. 참석한 사람은 5대 회장, 부회장, 2대회장, 저,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 세네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습니다. 대립구도가 되어버린 5대 임원진과 저의 의견을 각각 듣고, 서로 합의(?)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다음의 세가지를 약속했습니다.
2. 적절하지 않은 제명에 대해서는 무효화를 하고 임원진은 제명된 5기들을 다시 장복으로 데려와라
3. 사태를 완전히 수습후 장복에서 모임을 하여 술 한잔 하고 없었던 일로 돌리자.
저는 나름대로 얻을 것을 얻었기에 제가 과격하게 나간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할 마음이 충분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뻤죠. 제 의도대로 진행이 된 것이니까요...
[장복] 4/8 공개 사과메일입니다.(열기)
[장복]4/9 사과의 글을 올렸습니다.(열기)
당시 까페에 사과의 글을 올리고, 학교 홈페이지에는 굳이 올렸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올릴 필요는 없었지만, 깨끗하게 잘못을 시인했다는 의미로 제가 올리자고 한 것이기에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현재 저 까페는 삭제를 했고, 학교 홈페이지는 리뉴얼이 되어서 두 곳의 링크모두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이구요.) 저는 이렇게 글을 올렸는데,, 5대 임원진에서는 반응이 없더군요. 재차 확인을 하고 시인을 하라고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참고 있었습니다.
[장복]4/13 임동환 회장님의 글입니다.(열기)
회의를 한지 거의 일주일이 지난 상태에서 5대 회장의 사과글이 올라왔고, 이로써 기본적인 것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조언(열기)
19금 발언과, "라이온 수카이"라고 한 게 좀 흠이긴 하지만, 다들 나한테 힘이 되어 주었다. 이런 메일을 받으면서 나는 더 노력해서 선배들과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같다. 그리고 마지막 열매(위의 대책회의 협의 사항 2,3번)만 맺으면 모든 게 다 끝나고, 편안히 군대를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도는 아주 느렸다. 아니 느린 정도가 아니라 제자리 걸음이었다. 5대 임원진에게 요청을 하고 또 요청을 했지만, "행사가 많아서 조금 미뤄졌을 뿐이다"라는 답만 주었고, 나는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방학을 맞았다. 학우들은 각자 고향을 향했고, 나는 국토순례 준비에 바빴고, 7월말~8월중순 동안은 장애인 형들과 국토순례를 했다.(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12월 10일로 입대 날짜를 정하고 입대 전까지 집에서 알바와 농사를 하기 위해 집(구미)로 향했고, 당분간은 JBY일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메일 한 통이 왔다.
4대 부회장 선배의 메일(열기)
그 동안 진행된 것이 없었고, 4대 부회장 선배가 나서서 마무리를 시작하신 것같았다. 비록 지금은 연락을 못 드리고 있지만, 배울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은 선배였던 터라, 난 선배를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하지만~!!!!
아무런 진행사항이 없이 12월이 왔고, 나는 군대를 갔다. 훗날 확인해보니 6대 임원진도, 7대 임원진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혼자 아파만 했습니다. 그래서 7대 임원진이 일을 하던 2003년 다시 까페에 글을 올리게 됩니다.
5기들의 마지막 학기, 그들을 복권시키자~!!!(열기)
반창고...(열기)
당시 임원진을 맡았던 후배들도 참 난감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두번을 들이댔는데 공식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더군요. 그냥 흐지부지(외형적으로) 넘어갔습니다. 아무런 수습없이,,,,
2004년 복학후 지금까지 JBY에 갈 때면 거의 매번 5대 회장의 약속 불이행으로 제명된 채 각각 흩어져 간 동기들이 떠오릅니다. 1학년때 같이 고생하고, 술마시고, 고민했던 우리 동기들이...
그래서 현재 JBY까페에서 저의 닉네임은 "5기 규식"이 아닌 "오기규식"입니다. 어떤 후배는 그냥 오기(傲氣)를 장난삼아 붙인 거라 생각하는데, 저런 사연을 지닌 제가 아직 장복에 남아 있는 저한테는 딱 맞는 닉네임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과거의 저 제명사건이 JBY의 분위기에 끼친 영향을 정리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前) 당시 JBY 회원들은 JBY가 자치기구이기에 회원은 교내 전체 학우이고 JBY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대표하여 활동을 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4대 회장이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자치기구가 된 초년이었기에 특수교육계열이 아닌 타계열의 과에서도 여러 학우가 참여를 했고, 각 행사마다 임원과 함께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정기모임이 아닌 임원회의자리를 누구나 와서 JBY의 고민과 현실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로 삼아서 1학년이었던 저도 마음편히 참석을 했었고, 2학기에 신설한 정보부장도 맡게 되었었습니다.
(後) 회원들의 생각과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기 시작하고, 제명과 관련된 회의 등을 거치는 동안 임원회의는 오직 임원들만의 회의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JBY 회원들은 JBY의 일들을 통보받는 객체로 바뀌기 시작했고, 참여도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제명사건으로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들 중 다수가 사라졌습니다. 또한, 신입회원들도 "임원진들에게 잘못 보이면 제명당한다"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신입회원의 수가 줄었고, 가입후 자진탈퇴를 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대외적 활동을 줄이면서 일할 꺼리들은 줄었지만, 그래도 교내의 사업꺼리들은 여전했거나 증가하였기 때문에 각각의 부담은 더 커졌습니다.
위에서 임원중심으로 바뀐 분위기와 합쳐본다면, 제명사건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뤘을 듯합니다.
주)
1.JBY : 해당 자치기구의 이니셜입니다. 훗날 검색히스토리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서 계속 후배들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니셜로 표기하였습니다. 메일내용중 특정단어는 너무 빈번히 나와서 아마 유추할 수도 있을겁니다. -0-
2.점역 : 책 등의 출판물을 점자로 보려면 점자프린터가 있거나, 사람이 직접 찍어야 합니다. 사람이 직접 찍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고,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크기에 점자프린터를 많이 이용하는데, 이를 위해서 출판된 것을 타이핑작업을 통해 파일로 만드는 일을 말합니다.
위의 내용은 저의 기억과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 지적해주시면 수정&추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