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광장의 유명인사 & 기말고사 이야기

 Category :: 2009ed/회상[回想]


2000년 1학기에 있었던 일을 회상해본다. 먼저, 당시엔 인터넷과 PC방이 퍼져나가던 시기이고, 간간히 메일주소도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이 지금처럼 막강한 힘을 가지기 전이었다. 펌질문화라는 게 대중화되지도 않았고 호빵(움직이는 호빵모양의 그림)이 유행하던, 그런 시기였다.

먼저, 녹두광장은 학교홈페이지에 있는 자유게시판의 이름이었다. 학교의 각종행사나 공지를 올리기 때문에 많은 학우들이 매일 방문하고 정보를 얻어가며, 이런 저런 글을 쓰기도 했던 곳이다.

당시, 나는 녹두광장에 펌질문화를 처음 만든 사람이었다. 까페 등을 돌아다니거나 지금의 사랑밭새벽편지(http://www.m-letter.or.kr/) 혹은 인포메일(http://www.infomail.co.kr/)과 같은 메일진을 통해 좋은 글을 찾아서 녹두광장에 올리는 일을 했었다. 뭐 누가 시켜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재미삼아 또는 공유를 목적으로 글을 올렸던 것이다.

1학년 1학기였던 나는 "삶과 논리적 사고"라는 수업을 들었었다. 홍성하교수님의 수업이였는데, 과의 선배들은 1학년들끼리 빨리 친해지라는 의도로 대부분의 동기들을 그 수업에 넣었고, 그 이유로 나도 들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수업시간은 매우 지루했다. 교수님께서는 항상 신화이야기나 논리의 성질 등, 아주 따분한 주제의 수업을 하셨다.(지금은 이런 주제의 수업이 좋지만, 그 때는 그랬다.) 게다가 월요일 5,6교시(내 기억으로는)였던 터라 밥을 먹고 수업에 들어가면 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잤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는 것보다 자는 게 낫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엇기에 졸리기 시작한다 싶으면 그냥 업드려서 잤다. 누군가의 시선이고 뭐고 신경쓰지 않고 잤다. 2시간 내내 졸 바에 1시간 푹 자고 나머지는 수업을 들으려는 계산이었는데, 학기초엔 그렇게 되다가 학기말이 되자 거의 2시간 내내 자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날 역시 점심을 충~분히 먹고 강의실로 향했다. 교수님께서 출석을 부르셨고, 나는 대답을 씩씩하게 한 뒤 깊은 잠에 빠졌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깨우는 듯했다. 잠에 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빨랐던 나는 순식간에 허리를 폈고 내 앞에는 교수님이 계셨다.

"자네가 윤규식군인가?"

"네"

"그래, 계속 자게"

"네"

그리고 잤다. 무슨 정신이었을까? 뭐 교수님이 자라고 했으니 잤겠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이미 다시 잠에 빠졌었고,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깨어났다.

강의실을 나오면서 갑자기 교수님이 나를 찾았던 게 너무 이상해서 주변에 있었던 동기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떤 일로 그렇게 된 건지....

풀 스토리


그렇다. 그래서 교수님은 날 깨웠던 것이고, 온화한 얼굴로 깊은 잠을 자고 있던 나를 보시고는 다시 재웠던 것이다.

동기들의 이야기로 전체 스토리를 알게 된 나는 잠시 멍해졌다. 교수님께 죄송했고, 나 자신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그 다음 주가 되었을 때 변한 건 없었다. 역시 나는 잠이 들었고, 교수님은 그냥 방치, 방관하셨다.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첫강의 때, 교수님은 중간고사를 보지 않고 기말고사로만 점수를 주신다고, 하지만 기말고사가 상당히 어려울테니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수업을 들어야 할 것이라고 하셨었다. 나야 뭐 자느라 못 들었지만, 교수님께서는 출석율이나 수업태도도 점수에 반영하겠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대략, 이런 상황에서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기말고사를 한 주 남기고, 교수님께서는 상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망상, 환상, 공상 등과의 비교, 그리고 상상의 힘 등, 지금은 좋아하지만 당시엔 상당히 지루해했을 내용인데, 역시 나는 자느라 못 들었고, 동기들은 들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교수님께서 "오늘 내용에 대해 각자 잘 생각해봐야 다음 주가 편안한 주가 될꺼야"라고 하시며 여운을 두시는 것만 겨우 들었다. 꼼꼼한 여자들의 특성에 맞게 동기들은 그 수업내용 전부를 필기했었고, 시험전까지 달달 외우고 또 외웠다. 하지만, 나는... 나는 뭐 그냥 대~충 훑어보고 말았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 때는 대책없이 시험을 보곤 했으니깐... ;;;

시험이 다가왔다. 시험지를 받기 전까지 동기들은 달달 외웠고, 나는 그냥 마음 편했다. ;

시험문제 : 상상에 대해 논하시오.

머리가 공허했다. 당연하지. 배운 게 있나, 들은 게 있나, 생각한 게 있나.... 그래서 나는 과감히 답을 썼다. 그리고 시험기간이 끝났고, 성적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평가(상위 30%만 A를 받게 되는...)로 성적을 주셨는데, 내가 A를 받은 것이다. 성적을 받고 나서 나는 교수님의 개방성에 대해 놀랐고, 고마웠다. 반면 동기들은 달달 외워서 B4를 두장이나 썼는데도 나와 같은 성적을 받았다며 투덜댔다. 뭐 나한테 좋으니 다 좋은 거였다.. ㅎ

근데 나는 과연 뭐라고 썼기에 나와 동기들은 저런 반응을 했을까?

답을 보자


정말 쇼킹하고 간단명료하지 않는가?

우석대학교 홍성하교수님, 복받으셨을 겁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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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9 22:53 2006/12/1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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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총각 2006/12/19 23:17

    멋진 답안이네요. 멋진 교수님이시구요..

    • 라온수카이 2006/12/20 11:08

      또한 멋진 댓글이네요(나름대로 패러디...)

  2. 그네고치기 2006/12/19 23:54

    (-_-)b

    • 라온수카이 2006/12/20 11:10

      시험 볼 때 이름쓰고, 저 답을 쓰는데 10분도 채 안 걸렸던 게 생각나네요. 제가 먼저 나가자 동기들은 토끼눈을 뜨고 바라봤죠...ㅎ

  3. 싸인펜 2006/12/20 01:12

    와우!! 대단한데요.
    교수님도 멋지지만, 저런 멋진 말을 쓸 수 있었던 라온수카이님의 생각도 멋집니다.
    _ )b

    • 라온수카이 2006/12/20 11:11

      그 때엔 생각이 무척 엉뚱했었나봐요. 뭐 물론 지금도 엉뚱하지만... ;

  4. 마래바 2006/12/21 09:18

    그런 답안에 평가를 해 주시는 교수님도 대단하시지만 ,그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용기 또한 부럽군요. 저 같으면 소심해서 (설사 머리에 그런 의견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평가 결과가 어찌 나올 지 확신하지 못하므로) 그런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을 것 같네요. ^^

    • 라온수카이 2006/12/21 10:37

      한 학기를 저렇게 성의없이 보내서 성적에 대한 기대가 없었나봐요. 해탈의 경지라고 해야할까요? ㅎ

  5. Peterpan 2006/12/22 14:47

    홍성하 교수님. 좋으시죠.ㅋ 사실 문제 정답이네요 뭐.

    • 라온수카이 2007/02/13 20:52

      다양함을 인정해주시는 모습에 그 이후로 볼 때마다 인사를 꾸벅~ 하고 다닙니다. ㅎ

  6. 아리스노바 2006/12/23 10:11

    교수님보다 라온수카이님의 답안에 더 놀라네요. 정답이라면 정답이잖아요?

    • 라온수카이 2007/02/13 20:53

      저렇게 다소 엉뚱한 생각들 덕에 저도 다양한 답들을 인정해오면서 살아가는 것같습니다.^^;;

  7. 신짱 2007/02/12 19:27

    처음 들르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블로그 글 몇개 읽어 봤는데 멋지시군요.

    • 라온수카이 2007/02/13 20:57

      블로그라는 게 누구나 다 "멋지다"라는 걸 알려주는 좋은 툴인 것같아요. 신짱님도 저만큼이나 멋지신 분일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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