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S는 혐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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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의무병으로 입대했다. 신체검사를 받고(2000년) 나중에 확인해보니 특기가 의무로 되어 있었다. 좀 지나서 전공이 "특수교육"이라서 그런 특기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선배를 통해 들었고, 아는 선배들은 대부분 의무병으로 복무를 하고 있었다.

논산으로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국군 군의학교에서 의무 후반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자대에 갔으나, 나는 행정병 일을 하게 되었다. 작은 중대(중대원 14명)지만 여단내에 있는 사단직할대의 한 중대여서 업무가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간단한 정맥주사나 소독, 봉합수술보조 정도의 일 외에는 항상 컴퓨터를 붙잡고 업무를 봐야했다. 행정병의 일상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잠은 인생의 옵션인 생활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살상"을 목적으로 한 부대가 아니기때문에 연등을 밥먹듯 하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생명"의 중요함을 강하게 느끼는 생활이었다. 업무에 바쁘더라도 환자가 오게 되면 환자의 "생존"을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처리를 해야했었다.(군의관의 처방을 받는다거나 "치료"가 주업무인 병사를 데려온다거나..)

그러던 어느날 부대에 사고가 터졌다. 여단의 한 전차대대가 훈련을 나가던 중 지휘용 장갑차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장갑차에 선탑을 하고 있던 간부는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그대로 깔렸다고 했다. 출동훈련 중이었던 터라 중대내엔 나를 포함한 최소의 응급대기 인원(군의관1, 운전병1, 치료계2, 행정병1)만이 남아 있었는데, 위급한 상황이다보니 치료계 한명만 남기고 바로 출동했다.

선탑할 때 상반신을 외부로 노출한 상태로 선탑을 하기 때문에 그 간부의 복부는 장갑차의 중량을 그대로 받아서 아주 납작해져 있었다. 그 간부는 눈은 돌아가고 들릴듯 말듯한 숨소리만이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간간히 들릴 정도였다. 조심스레 들것으로 엠블런스에 싣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가는 도중,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몇일 전까지만 해도 친절히 경례를 받아주던 그 간부, 결혼을 두어달 남기고 있었던 그 간부, 여러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던 그 간부가 내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불가항력이라고 나자신을 위로했지만, 그 위로는 머리에서만 맴돌뿐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나는 흥분했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병원에 도착했고, 바로 헬기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그 간부는 주검이 되어 한 줌의 재로 사라져갔다. 그 뒤로 여단 내의 보병대대에서 훈련중 실제상황 묘사를 위해 자동사격으로 설정해두었던 육공(기관총)의 각도가 빗나가서 한 병사의 머리를 관통하는 사건이 있었고, 역시 그 병사도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생존"을 그렇게 고민했던 나는 그렇게 죽음에 무능했고, 가슴만 아파했다. 죽음은 내가 손 닿을만한 거리에서 손에 잡히지 않게 흩어져 있다는 걸 느꼈다. 점점 "생존"보다는 "죽지않음"에 대한 생각이 깊어져갔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FPS를 접하게 되었다. FPS는 가상전장 속에 나를 밀어넣는 것같았다. 나는 사람을 죽여야했고, 죽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을 해야만 했다. 게임속의 살상이 현실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게임 속의 폭력성은 현실의 성향에 영향을 조금씩 미쳤다. 게임을 하는 것도 나고, 현실 속에 사는 것도 나니까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머지 않아, 나는 FPS를 끊었다. FPS게임을 하는 것도 싫었고, 게임방송(온게임넷, 엠비씨게임)에 나오는 장면들도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려는 그래픽들, 상대를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죽인다는 전략들(심장을 쏜다거나 머리를 쏜다거나..)을 볼 때마다 나는 손발이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FPS는 혐오스럽다. "게임은 단지 게임일 뿐"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쓴 채, 사람들의 폭력성을 증가시키고, "죽음"을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만큼 가볍게 만든다. 그래서 난, FPS가 싫다.


※ 이 글의 FPS는 "1인칭 슈팅 게임"을 말하는 것으로 레인보우식스, 카운터 스크라이크, 워록, 스페셜포스, 서든어택 등 실사위주의 게임만을 말한다.

이 글을 완성하는데 일주일 넘게 걸린 것같다. 아직도 미완이지만, 자꾸만 보태다보면 글이 산으로 갈 것같아 여기서 접는다. 글에 넣고 싶었던 꺼리에는 제대 10여일 지난후 보았던 '태극기 휘날리며', '데스티네이션'시리즈,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받은 미국의 병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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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8 11:15 2007/03/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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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싸인펜 2007/03/08 11:28

    글의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댓글을 달기가 어렵네요^^
    군복무를 하는동안 너무나 큰 사고를 봐 오셨군요. 제가 근무했던 부대에선 사람이 다치거나 대형사고가 난적은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 라온수카이 2007/03/08 11:30

      저도 반쯤 써놓고 이거 완성할까말까, 공개를 할까말까를 한참 고민했습니다.;;; 사실... 저한테도 무척 어려운 주제에요. ;;

  2. 임건순 2007/03/12 22:30

    음악이 서글퍼서 더더욱 읽는 내내 눈물이...나 역시 전차부대여서 사고가 많았지.
    우리 대대에서는 없었지만 50 총알이 내 옆으로 지나간적은 있지...섬뜩 그 자체~
    언젠가 정서장애 수업시간에 발표했던 것처럼... 사고자체를 바꾸는게 좋을 듯.
    FPS게임이 나쁜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너무 어린 친구들이 맹목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서 화가날때는 신경질날때 방아쇠를 당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 이게 더 문제일 거 같아.

    덧:우리 조카 3, 6학년 서든어택으로 여가시간 활용하고 나머진 모두 과외...

    한내관 생활 잘하고 화이팅~ ^^

    • 라온수카이 2007/03/13 20:41

      건순형~!
      잘하면 안 볼 수도 있었는데 아쉽네요(?).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다는 건, FPS게임과 툭하면 총질하는 영화들(심지어 한국영화에서도~!)의 영향이 큰 것같아요.

      건순형님도 학교생활 화이팅~!
      (다음엔 블로거 대 블로거로 만나요~)

  3. 보드라우미 2007/03/24 03:10

    가슴 아프네요. 군생활 중에 돌아가시는 분들 계속 있어요. 역시 군대니까요.
    폭력성 게임을 하면 폭력성을 키운다는 문제...... 환타지가 아니라 너무나 현실적인 폭력의 세계...... 게임이라고 생각하면서 현실의 대리체험을 하는 세계......

    • 라온수카이 2007/03/25 14:12

      점점 "가상현실"이라 불리는, 속은 "실사"라고 불리는 것들에 의한 폐해가 늘어날 것같아요... 문명의 이기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을 것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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