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The Maginot Line

 Category :: 낙서


삶의 모든 장면에서, 모든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마지노선을 긋는다. 내 여자친구가 될 사람의 키는 얼마 이상이라던가, 약속시간에 늦을 경우 몇시간까지는 봐줄 수 있다와 같이 "최소한 지켜져야 할 것"이라 불리는 것들이 그 마지노선인 셈이다.

금요일에 8년째 몸담고 있던 모임에서 자진탈퇴를 했다. 탈퇴전에 저지른 일의 마무리를 짓지 못했지만, 더 늦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탈퇴를 선택했다. 나의 탈퇴에 후배가 많이 의아해하는 것같았다. 후배는 나에게 묻고 싶었으리라. 왜냐고... 왜 탈퇴를 하는 것이냐고...

최소한의 원칙마저 무너지는 모습 속에 나 자신을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매년 무너지는 모습들 속에서 마지노선을 다시 긋고, 또 다시 그었지만, 이번마저 내가 마지노선을 다시 그으면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나는 나의 마지노선을 지키기고 싶었다. 더 변질되기 전에, 더 흐려지기 전에 그 모임을 지키고 싶었다. 여기서 브레이크를 밟고 싶었고, 박제를 만들어 내 추억 속에, 사고 속에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자진탈퇴라는 것을 선택했다.

사회가 아무리 술을 권한다 하더라고 결국 술잔을 가득채워 알콜을 체내로 털어넣는 것은 그 자신이다. 취함에 대한 책임은 그 자신이다. 취함에 대한 비난의 대상도 그 자신이 될 것이다. 탈퇴에 대한 비난은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동안 내가 소중히 여겨왔고,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던 것들마저 무너져만 가는 마지노선 앞에 무가치해 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마저 들었다. 그래서 내 발로 걸어 나왔다.

아직은 후배의 "왜?"라는 것에 대한 대답을 나는 해주지 않았다. 아니 왜라고 묻는 것조차도 막아버렸다. 변질되는 모습 속에 후배가 있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왜냐면"이라는 답을 해주는 것이 그를 이해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틀이 지난 지금 후배는 "왜?"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내렸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저녁약속을 했다. 그의 "왜냐면"을 들어보고 나의 "왜냐면"을 말해준 후, 그 모임은 곱게 접어 마음 한켠에 둘 것이다. 그리고 훗날 흐뭇해하겠지. 너희들의 것은 변했지만, 내 것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난 변하지 못하게 박제로 만들어 버렸다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단, 제가 원저작자가 아닌 경우, 각 저작권자의 합의하에 이용하셔야합니다.
2007/03/25 14:09 2007/03/25 14:09


트랙백쓰기 | 댓글쓰기 | 조회수 6451
trackback :: http://raonsky.com/tt/trackback/447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오픈아이디로만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Family Sit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