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시인을 만나다.

 Category :: 관심


오늘 우리학교(우석대학교)에서 제11회 전북 고교생 백일장이 열렸다. 몇 일전 학교 앞에 걸려져 있는 현수막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 중 내 눈에 딱 띄인 것이 바로 정호승시인 문학강연이었다. 나에게 시인으로서 처음(교과서에 소개된 시인을 제외했을 때) 다가왔던 시인이었고, 시의 맛을 알려준 분이기에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찾았다.(이 시집에서 "수선화에게"는 곱씹을 수록 묘한 맛이 나는 시인 것같다.) 8년이라는 세월때문인지 조금 누렇게 색이 바랜 책이지만, 서명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기쁜 마음으로 문화관 아트홀로 향했다. 가면서 마치 빠순히마냥 마음이 두근거렸다. 시 속에서 그려왔던 시인의 느낌과, 실제로 보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또 어떻게 다를까 기대도 했다.

백일장에 온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뻘쭘히 왔다갔다 하다가 아트홀 한쪽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았고, 곧 도우미(자원봉사하는 우석대 문예창작과 학생)를 통해 시인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쭈뼛쭈뼛, 더듬더듬, 머뭇머뭇, 조심조심... 학예발표회를 하는 유치원생같이 시인의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윤규식이라고 합니다. 서명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조심스레 건낸 말을 시인은 게의치 않고 서명을 했다. 나에게 시인은 "꽃"이었지만, 시인에게 나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나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시인은 나에게 꽃이니까...

고등학생들, 그것도 백일장에 참석한 고등학생들이 강연의 대상이여서 내용도 그들에게 맞춰진 내용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도 깨우침과 자극이 되었다. 이런 느낌을 몇 타의 두드림으로 표현한다는 게 참 안타까운 짓이지만, 생각나는 내용들을 간추려 보면 이렇다.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하다. 무던히 노력하는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시를 쓰는 방법을 깨치게 되고, 더 잘써진 시를 쓸 수 있다.

중학교(대구 계성중학교)때 국어시간에 내 준 숙제가 기억난다. 대구 신천의 자갈밭을 떠올리면서『자갈밭에서』라는 시를 썼었는데, 당시의 교사가 "너는 시인이 될 자질이 충분해~"라고 하면서 칭찬을 해줬었다. 이를 계기로 불을 주제로 한 교내 백일장에도 나갔었고, 나는 "등불"이라는 시를 써서 장원을 했다. 그 외에도 매달 교내 문예전이 있었는데 장원의 상품이 교내 매점 상품권이었고, 이 것은 내 삶의 큰 도움이 되었다. 친구들 빵도 사주고, 노트도 사고, 운동복도 사고...

문예장학생 제도가 경희대밖에 없었던 터라 나는 경희대로 진학을 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을 하게 되면 장학금을 줬는데, 이를 위해 휴학하고 군대를 가 있는 동안에도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다. 군복무 중 동시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었는데 "동시로 당선되면 장학금 안줘~"라고 했던 교수님의 우스갯소리를 그대로 믿어서 제대할 때까지도 시를 잘 쓰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결국 시를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시의 밑거름은 일상생활 속에 있다.
어린 시절, 어느날 밤 변이 마려워 마당에 나갔는데 화장실 가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집 옆에 있는 사과나무 아래에서 변을 봤다. 그런데 사과나무 아래에서 변만 본 것은 아니다. 변을 보면서 고개를 들었을 때 세상을 비추는 달과 빛나는 별을 봤다. 지금도 내 머리 속에는 "어느 밤, 달과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에서 사과나무 그늘에 변을 보는 아이"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아 있다.
대구는 눈이 많이 왔다. 겨울에 사촌들과 눈사람 만드는 것을 참 즐겼는데, 손이 시려서 손에 털고무신을 끼우고 눈을 굴렸다. 그 때는 재미있어서  좋았고, 지금은 추억이 되어서 좋다.

시를 교과서로 접하게 되면 시는 어려워진다. 분석해야 하고 파악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시와 친해지려면 교과서 밖의 시들을 많이 만나봐야 한다.

TV에 네모난 수박이 나왔다. 네모난 수박을 만들기 위해 수박이 막 크기 시작할 무렵 옮겨심기를 해서 수박을 아크릴통 속에 넣는다고 했다. 동그랗게 커 나가야 할 수박이 네모난 모양을 하기 위해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을까? 수박은 네모낳게 되면서 얼마나 사람들을 원망했을까?

지금 서른이 넘은 아들이 군대가기 전이었다. 어른으로 인정해주겠다는 뜻으로 술을 같이 마시자고 했는데, 아들은 입대전날까지도 나를 위한 시간을 못 냈었다. 입대전날 늦은 시간에 얼큰하게 취해서 들어왔던 아들은 가슴에 종이학 천마리가 든 병을 들고 왔었다. 입대하면서 아들은 그 종이학을 잘 보관해달라고 했고, 나는 그것을 아들의 방 책상에 놔두었다. 아들이 군대 있는 동안, 그 종이학을 보며 아들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종이학을 하늘에 날려보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썼다. 시를 통해서라면 종이학을 하늘 위로 날려보내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남쪽으로 가고 싶어할 테니 장소는 지리산으로 정했다. 지리산으로 날려보내면서 하나 걱정이 된 게 있었다. 학이여도 "종이"학이니 비가 오는 게 걱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썼다. "비가 오면 종이는 벗어 던지고 날아가렴"

얇은 나뭇가지들이 왜 부러질까? 길가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이 왜 부러져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 봤다. 그러다가 이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는 것은 약한 새들이 집짓는 것을 돕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가 최근에 썼던 시가 여기에 대한 시다. 제목은「부러짐에 대하여」다.

이 백일장에서 상을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하지 않다. 계속 "노력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문학에 삶을 던져보라. 문학이 삶을 가꾸어 줄 것이고, 삶을 아름답게 해 줄 것이다.

※토막토막 생각나는 것도 있어서 일부는 제 느낌을 반영해서 살을 붙였습니다.


시인은 강연의 끝자락에서 직접 시를 낭송했다. 교과서에서 보았을 꺼라며 소개를 했는데, 6차교육과정(현재는 7차) 속에서 배웠던 나에게는 다소 의아했다. 하지만, 시의 앞머리를 들었을 때, '아. 이 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레 눈이 감겨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시인과 사진을 한 번 찍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연단에서 내려오는 시인을 계속 쳐다봤는데, 바삐 빠져나가는 시인의 발을 잡기가 미안해서 차마 말을 못 걸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조금 남는 게 다음 만남의 설레임을 드높일테니 그냥 여기서 만족하고 나도 아트홀에서 빠져나왔다.^^


사실, 정호승시인의 강연을 제 pmp(A2)로 녹음했었는데, 버튼을 잘못 눌러서 1시간짜리 무음 mp3파일만 떨렁~ 생겼습니다. 조금만 더 신경쓰면 됐는데,,,, 아쉽네요. 그리고 오늘 제게 호의적으로 대해줬던 도우미 학생에게 블로그에 공개하겠다는 의도를 밝히고 사진공유를 요청했습니다. 사진을 받게 된다면 약간의 내용수정과 함께 사진을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추가(07,04,26)
확대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단, 제가 원저작자가 아닌 경우, 각 저작권자의 합의하에 이용하셔야합니다.
2007/04/21 17:11 2007/04/21 17:11


트랙백쓰기 | 댓글 4 | 조회수 9317
trackback :: http://raonsky.com/tt/trackback/455
  1. 우연 2007/04/22 22:44

    시간이 되었다면 나도 갔을텐데- 규식이가 문학소년다운 모습도 있었네?

    • 라온수카이 2007/04/24 19:28

      당신이 날 잘못 알고 있었던거야.ㅎㅎ

  2. 비밀방문자 2007/08/06 20:21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라온수카이 2007/08/10 01:38

      강연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그 날 서명을 받았던 것도 너무 좋았구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오픈아이디로만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Family Sit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