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소시민 vs 뺑소니미수아저씨

 Category :: 2009ed/일상


쏟아지는 빗 속에서 우산을 쓰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중이였습니다.

사건 발생지는 안산 롯데마트 옆 사거리였고,

롯데마트를 오른쪽에 끼고 홈플러스 쪽으로 가는 길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 중이었죠.
(시간은 2시~2시 6분 사이.)

진행방향

파란색 : 제 경로, 빨간색 : 여고생 경로


초록불로 바뀌고, 한 차선 정도 건넜을 때, 약간 뒤에 출발한 여고생 하나가 뛰어서 제 옆을 지나가더군요. 약속에 늦었다던가 하는 사정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시선은 정면을 향했고,

제가 중앙선쯤 왔을 때, 초록불인 상태인데 일시정지 없이 바로 우회전 하려던 차량이 있었습니다. 레조나 카렌스처럼 뒷부분이 큰 차량이었구요

은색, 혹은 쥐색(은색보다 좀 더 어두운 계통인데 뭐라고 표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의 이 차량은 여고생과 그대로 부딪혔죠.
여고생은 뛰어가던 속도에서 그 차량을 피할 수 없어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지 약간 더 빨라진 상태(제 주관상입니다.)여서 차량은 여고생의 오른쪽 엉덩이 부분을 치었죠.

세게 부딪히지는 않았으나, 여고생은 충격으로 약간 중심을 잃으면서 차량진입방지봉(이것도 명칭이 뭔지..;)의 바로 왼쪽에 왼발을 디디면서 인도쪽으로 쓰러질 뻔했구요.
사고위치

차량이 횡단보도 위에 정차된 상태여서 이 상황을 차량의 뒷편 왼쪽 대각선 부분에서 보면서 지나갔습니다.

천천히 지나가면서 그 광경을 보는데,

운전자가 나오면서 여고생한테 그러더군요.

"안 부딪혔지? 괜찮지? 부딪힌 거 아니지?"

좀 의아했습니다.

저는 일단 진정시키고, 다친 데는 없는지 살펴보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 자리에 섰죠. 대략 신호등 봉에서 한두 걸음 더 갔을 때였습니다.

운전자(운전자는 상고머리에 새치가 좀 있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는 당황해하는 여고생에게 "괜찮지? 괜찮은거지?" 라고 몇 마디 하고는 다시 차에 타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여고생을 불렀죠.

"아가씨(저도 왜 아가씨라고 불렀는지는 잘..;;) 이렇게 가면 안되요. 얼마나 다쳤을지 모르니 병원 가봐야죠. 연락처도 받고 해야되요."

차에 탔던 운전자는 저를 보고는 다시 내리더군요.

뒷좌석에 탔던 운전자의 아내로 보이는 사람은 문을 열어서 저희를 보구요.

"당신이 뭔데 그러냐? 무슨 일 때문에 그러냐?"

"아저씨, 사람을 치어놓고 그렇게 가시면 안되죠. 병원도 데려가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괜찮다고 하지 않냐? 그러면 경찰에 신고해라. 신고해"

아저씨의 당당함 아니 뻔뻔함이 참 어이가 없더군요. 잠시 그러던 중... 아저씨가..

"이봐요 아가씨, 차에 친 거 아니잖아. 아가씨가 넘어진 거잖아. 차에 친 거 아니지? 그렇지?"

여고생 : "차에 치었어요"

아저씨는 침묵모드...

"봐요. 친 거 맞잖아요. 그리고 제가 길 건너면서 봤는데 무슨 소리하시는 거에요?"

그랬더니 그제서야 명함을 내밀더군요.

저도 약속에 늦었고, 여고생도 당황함+급함, 게다가 운전자가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까 자기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는지 빨리 자리를 뜨려고 했구요.

여고생이 명함을 받고, 그 자리에서 그냥 바로 돌아섰습니다.

여고생이 먼저 자리를 뜨기에 저도 같이 갔죠. 방향이 같더라구요.

오른발을 약간 절뚝 거렸습니다. 오른 손으로 허리 아랫부분을 만지면서 가는게 충격이 제 생각보다는 조금 더 컸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고생에게 다가갔습니다.

"학생, 명함 잃어버리지 말고, 얼른 부모님한테 전화드려. 병원도 가보고, 병원비도 내놓으라고 해야돼요."

여고생, 울먹이더군요.

비가 오지 않았다면, 초등학생이었다면, 좀 안아주고 달래줬을텐데, 당황하고 겁먹은(운전자에게..) 여고생에게 되려 실례가 되는 행동일까봐 참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초등학교 교사(특수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기간제이지만.ㅠ)에요. 학생 보고 우리 애들이 생각나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더라구요. 나중에 도움 필요하면 연락해요"

하면서 연락처를 핸드폰에 찍어줬습니다.

그리고 여학생은 여학생 갈 길로, 저는 제 갈 길로 왔죠.

여고생과 헤어지는 길에 핸드폰에 번호를 찍어두고요. 사진을 못 찍었던 게 아쉽더군요.

4시 경.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기에 받았더니 여고생의 아버지인 것 같더군요.

병원에 간다면서 상황을 물어보기에,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아버지가 무척 고마워하시더군요.

6시 경.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아버지가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했나 봅니다.

경찰관에게 상황 이야기를 해주고, 나중에 한 번 나와달라길레 근무시간만 아니면 괜찮다고 흔쾌히 말해주고요.


마지막으로...

제 블로그에 글 올리는 건.

일단 제 기억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 첫번째이고,

다른 블로거 분들도 정의로운 소시민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저 상황에 대한 다른 분들의 시각을 들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서입니다.

마칠께요~


근데, 안산이나 전주나 이거 뭐 비가 엄청 많이 오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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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0 20:46 2009/06/2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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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eonia 2009/06/22 10:20

    정의로운 시민의 승리를 본거 같아 기쁩니다...T_T
    저도, 저런 상황에 정의를 보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

    • 라온수카이 2009/06/25 11:13

      그 현장에 있었다면 아마 저처럼 하셨을 겁니다~!

  2. 여게바라 2009/06/22 16:27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하고 다른 말을 해야지.. 지가 잘못아닌거부터 확인하려하는군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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