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난해에 과 문집같은 곳에 올린 글인데,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갈 것같아 옮긴다.
내가 유특인이 되고 5년이 흘렀다. 지금은 2학년이고 1학년을 다녔던 시절과는 3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있었다. 그 동안 폐인으로 지냈던 알바시절, 장애인들과 함께한 국토순례, 나라의 부름 등 많은 것들이 그 여백을 채우며 지나갔다. 그러면서 나의 모습들도 많이 변한 것같다. 그런 까닭에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유특인의 바람직한 모습을 한번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을 이야기하는 나는 3학년이나 4학년의 모습이 아니라, 더군다나 졸업생의 모습도 아닌 지금의 모습으로 이야기 할 것이다.
먼저 지금 내 생각의 비교대상으로 누구나 겪었을 고3시절을 떠올려본다. 그런데 시간은 망각을 동반하는 것인지라 너무 질적인 차이가 나는 그 때 모습들은 기억의 공간에서 조각 조각 나뉘어져 버렸다. 또한 그 당시 내 생각들의 단편들을 모아보니 다른 기억들에 의해 많이 변질된 체로 지금 남아 있는 것같다. 그래서 나의 고3시절을 물들였던 물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후배녀석(박종훈,구미고3)의 글을 인용해본다.
난 지금 고등학교에서 수화동아리로 활동하고 있다. 수화실력은 부끄러울 정도지만 말이다. 현재 3학년이라 활동은 못하고 있지만 1,2 학년때 동아리 이름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많은 농아인들을 보았다. 다리가 불편한 아저씨, 말을 하지 못하는 아주머니, 듣지를 못하는 내 또래의 아이... 하지만 내가 접한 사람중에 유아들은 없었다. TV에서나 가끔 접했지 내가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없는 것같다. 아직 어리니깐 누구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직 사회에는 나오기 벅차서 그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사회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애석하게도 어린나이에 뜻하지 않게 버려지고, 상처받고, 고통을 앓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많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딱하게 여겨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여 생긴 것이 유아특수교육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생략)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채 고통 받고, 울부 짖으며, 칭얼대고 부모라는 존재가 필요할것인데 그들에게 힘을 보태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도 무관심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아특수교육... 참으로 이 사회에서 어떤 것 보다도 필요한 말인 것 같다. 그것은 이 사회의 기둥이 되는 새싹들을 보듬어 주고 키워주는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점차 우리나라를 이끌 그런 아이들에게 무한한 힘이 되어 주고 꿈을 키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우리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보면서 마침표를 찍는다.
후배녀석은 글을 보내면서 ‘형 수정해야 할 것같으면 말씀해 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었다. 하지만 약간은 거칠은 느낌과 지금은 다소 ‘저건 아닌데’하는 생각. 딱 그 때의 내 생각들인 것같다. 내가 생각하고 예상했던 유특인의 모습은 교육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생산적 복지’를 꿈꾸는 일종의 시혜자로써의 모습이 더 강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우석대 유특과 00학번이 되었다. 입학을 한 뒤, 장복인이 되고 에바다사건, 열린넷, 장애인과 장애우의 차이점, 장애인주차공간의 심벌에 대한 고민 등의 많은 물음들 속에 빠지면서 내가 생각하는, 내가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유특인의 모습은 매우 사회참여적이고 쉽게 말해 운동권적인 모습이었다. 어떤 동기에게 집회에 가는 내 모습이 그저 ‘바르지 않은’ 행동이라고까지 들을 만큼 동기들 중에는 그런 성향을 띤 아이들이 적은 편이었다. 그런 까닭에 외곬으로 빠지는 것은 아주 쉬웠다. 또한 그런 내게 많은 유특인의 모습은 답답하기만 했다. 심지어 당시 운영하던 까페에서 ‘태양바라보기’라는 이름으로 지금 당장의 눈 앞에 놓여진 성적이나 기타 등등보다 중요한, 태양이라고까지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던 장애인인권에 관심을 갖자는 운동도 했을 정도다. 그런 내게 열린넷이라는 모임은 하나의 돌파구나 다름없었다. 당시 나의 목마름으로 참여한 모임의 활동들은 내게 더 강화를 주었고 그런 까닭에 내 주위의 유특인들의 모습에서 나는 더욱더 독단, 독선에 빠졌다. 그래서 새내기딱지를 거의 떼어갈 무렵에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찾아다녔던 유특인의 모습을 지금 다시 되돌아보면 오히려 사회복지, 그것도 장애인복지적인 모습이었다. 중등특수를 전공하던 막역한 친구녀석에게 유특의 모습이 안 어울리고, 안 맞다고까지 들었을 정도였니까...
그리고 장애인들과 함께 국토순례를 하고, 신의 아들이 아니고서야 피할 수가 없다는 대한민국 남자의 의무를 지키고 3여년만에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왔다.
복학을 하고 한 학기를 다니는 동안 유특인의 하나인 내 모습에 교육자라는 향기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발랐다. 전공지식에 대한 갈증, 선배로서의 모습에 대한 기대감, 등의 것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가 교육자의 모습을 많이 갖게 한 것같다.
변증법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내가 생각하는 유특인의 모습은, 지금까지 나의 생각을 한번씩 쓰다듬고 지나간 것들의 집합체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유특인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차분히 정리해서 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유특인의 모습은 교육적 시혜자가 되어야 한다. 교육에 있어서는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때로는 무기력에 빠뜨리고 절망의 벼랑 끝에 몰고가더라도 꿋꿋이 자신의 모습을 지켜나가는 것. 그게 유특인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나 고민들을 나누는 것에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자칫 잘못해서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교육을 한다면 사회적인 시선이나 인식, 편견의 벽을 허물지도 못하고, 오히려 더 쌓아만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취미나 특기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하고 그것을 해 나간다고 해도 그것은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이다. 유특이 삶의 절대적인 이유는 아닌 것이다. 또한, 이 사회에서 한 성인으로 살아가기엔 유특만 생각하기엔 너무 재미가 없지 않을까?
나의 말들이 대다수에게 절대적이고, 집단의 공감을 얻어내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만큼 서로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것이 아집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모습들이 그리 나쁘다고는 하지 않는다. 이 말이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방학을 기회삼아 각자 자신의 이상적인 유특인의 모습을 한번 그려봤으면 한다. 서울로 가는 것을 알고 서울로 가는 것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서울로 가는 것은 천지차이일테니까.
다시 나를 다잡자.